고려 탄생과 몰락

고려 탄생 부흥 그리고 몰락

고려 쉽고 빠르게 알아보기

고려는 918년 왕건이 즉위한 이후, 1392년 이성계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한반도에 존재하던 왕조국가입니다.

통일신라 하대에 현재의 개성 지방의 호족인 왕건이 918년에 건국하였고,

919년에 송악을 개경이라 이름을 고치고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 뒤, 935년 신라, 936년 후백제를 차례대로 복속하면서 한반도를 통일합니다.




고려의 탄생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한반도에 존재한 국가로, 그 기원은 고려를 창건한 태조 왕건의 노력에 힘입어 태어났습니다.

한반도는 9세기 말에 세 나라, 즉 신라, 백제, 고구려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신라가 한반도의 대부분을 통일한 후에도, 그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내부 분열과 교통 난, 그리고 지방 권력자들의 독립 추구로 인해 중앙집권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지방 권력자들이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태조 왕건

왕건은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등장한 개성 지방 권력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원래는 고구려의 후예로, 그의 선조들은 이전에 중앙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었던 가문이었습니다.

왕건은 청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군사적, 경제적 힘을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먼저 후백제를 설립한 후, 신라와의 연합을 통해 태백산맥 지역의 반란군을 진압했습니다.

왕건은 이러한 군사적 성과를 기반으로 918년에 ‘고려‘라는 새로운 국가를 선포하고, 그 첫 번째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이름은 고대 한반도의 대표적인 나라인 ‘고구려’에서 유래된 것으로, 새로운 국가가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고려 부흥기

고려의 부흥

고려는 그 긴 역사 동안 여러 위기와 난관을 맞았으나, 각기 다른 시기마다 그 위기를 극복하며 부흥의 시기를 맞았습니다.

  • 10세기 중반

고려는 초기 건국 이후의 혼란과 내전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3대 광종의 통치 하에 중앙 권력을 강화하며 안정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광종은 경제와 문화, 그리고 국방 분야에서도 다양한 개혁을 실시, 국력의 확충을 추구했습니다.

  • 11세기

문화와 학문 분야에서 큰 발전을 보였습니다.

이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성문학의 대가인 최치원이 있습니다.

그는 고려의 학문과 문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그의 저서와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 고려 중기

국제적인 관계에서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송나라와는 교류가 활발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기술, 그리고 제도 등을 수입하여 고려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 12세기

몽골의 침략 위협을 받게 되었지만, 이후 고려는 몽골 제국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부흥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왕들과 그 업적

고려 시대는 다양한 왕들이 통치하며 그들 각각의 업적으로 역사가 쌓여갔습니다.

그 중 몇몇 대표적인 왕들과 그들의 주요한 업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 태조 왕건 (918-943)

업적: 고려 건국의 창시자로, 삼국을 통일하며 고려를 세운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입니다.

국가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 광종 (949-975)

업적: 국내의 혼란을 잠재우고 중앙 집권을 강화한 왕.

또한 문화와 학문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습니다.

  • 문종 (997-1009)

업적: 문종의 통치 기간 중 여러 개혁을 추진하여 국가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 현종 (1009-1031)

업적: 몽골과의 관계 개선 및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제적인 위치를 높였습니다.

  • 인종 (1122-1146)

업적: 국내 안정을 이루고 법령 및 제도 개혁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추진하였습니다.

  • 명종 (1170-1197)

업적: 군사정변을 극복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여 고려의 안정을 이끌어냈습니다.

  • 고종 (1213-1259)

업적: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고려의 쇠퇴와 멸망

고려는 건국 이후 50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한반도에서 꽃을 피웠지만, 그 긴 역사 속에서 여러 번의 위기와 난관을 겪으며 쇠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는 고려의 쇠퇴 원인과 몰락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의 쇠퇴

  • 외부적 위협

몽골의 침략: 13세기 초반, 몽골의 연속적인 침략으로 고려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고려는 몽골의 세력 하에 있게 되어 중앙권력의 약화와 국력의 소진이 이루어졌습니다.

왜구의 침략: 몽골의 영향이 약해진 후, 일본의 해적인 왜구의 지속적인 침략도 고려의 안정을 해칠 요인이었습니다.

  • 내부적 분열

사대부의 갈등: 고려 후기, 국내의 여러 세력 간의 권력 다툼과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사대부라 불리는 대귀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은 중앙정치의 불안정을 초래했습니다.

권력의 집중화: 왕권이 과도하게 강화되면서 중앙의 권력 기구와 사대부 사이의 균형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 경제적 어려움

노비 문제: 고려 후기에는 노비의 수가 급증하며 그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세금 부담: 몽골과의 관계로 인한 군사적, 외교적 비용과 여러 내외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이 국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려의 멸망

고려는 918년에 시작하여 1392년까지 약 50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했으나, 그 긴 역사의 끝에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 외부적 압박

명과의 갈등: 고려는 몽골 제국의 붕괴 후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압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명은 고려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를 시도하였고, 이로 인해 양국 간의 관계는 긴장감을 띄게 되었습니다.

  • 내부적 분열과 혼란

사대부 간의 갈등: 고려의 귀족 사이에서 권력을 두고 벌어진 다툼은 국가의 안정성을 해칠 정도로 심화되었습니다.

군사 쿠데타: 1388년, 일본에 대한 원정을 계획하던 중 일어난 이변으로 이를 주도하던 최영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 경제적 약화

노비와 농민들의 부당한 대우와 무거운 세금 부담으로 인해 여러 차례 농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고려 중앙의 권력 약화를 불러왔습니다.

  • 지도자의 부재

왕과 중앙 정부의 힘이 약화되며 국가의 지배력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원인들이 겹치면서, 1392년, 이성계(이후 태조로 즉위)가 새로운 국가 조선을 세우면서 고려는 그 긴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멸망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 조선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고려 역사적 유산

고려는 500년에 이르는 그 역사 동안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유산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럼 고려의 주요한 역사적 유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청자와 공예품

고려는 청자 제작 기술에서 뛰어났습니다.

특히, 고려 청자는 그 아름다운 청록색과 우아한 형태로 유명하며, 현재도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금동대향로금제 불상 등 다양한 공예품도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문화와 학문

고려 시대의 성립과 발전은 한국 전통 문화의 기본을 이루는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최치원, 김부식 등이 있으며, 그들의 저서와 연구는 한국의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 조계종 불교

고려 초기, 불교는 중요한 국책 종교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조계종은 이 시기에 큰 발전을 이룩하였고, 현재까지도 한국 불교의 주요한 학파로 남아있습니다.

  • 외교 정책과 국제 관계

고려는 몽골, 중국, 일본 등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외교적 전략을 구사하였습니다.

이는 후대 조선의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 법령 및 제도

‘경국대전’이라는 법전은 고려의 법제와 국가 운영 방침을 담고 있으며, 이는 후대에도 법제 개발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 언어와 문자

고려 시대는 한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의 탄생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그 전반적인 문화적 배경은 조선 초기의 ‘훈민정음’ 창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려의 이러한 유산은 오늘날 한국의 문화, 예술, 학문,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깊은 역사와 전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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